본문
중국의 4대 고도중 하나 남경(南京: 난징)
남경은 중국의 유명한 역사 문화도시로서 3,0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. 삼국시기 오나라가 229년에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건업이라 불렀다. 서진(279년)이 중국을 통일한 후 282년에 건업을 건강으로 개칭했다. 317년 사마예가 건강에서 동진을 세웠다. 그 후의 송· 제· 양· 진도 모두 이곳에 도읍을 정하였다. 이 시기 남경은 전국의 정치· 경제· 문화 중심지로 부상했다.
기후는 무한, 중경과 함께 중국의 3대 더운 지역으로 꼽힐 정도로 여름 기온이 40℃까지 올라간다. 그리고 겨울에는 때에 따라 영하의 기온으로 내려가기도 하며, 가을은 건조하다.아열대 습윤 기후에 속하여 사계절이 분명하고 비가 많이 내린다. 연평균 기온은 15.6℃이며, 연평균 강수량은 1106㎜이다. 매년 6월과 7월 사이는 장마철이다. 총면적은 6516㎢ 이고, 총인구는 530만 명이다. 그 중 농업인구가 260만 명, 비농업인구는 270만 명이다. 남경을 지나가는 장강의 길이는 약 95㎞로, 넓고 수심이 깊어서 만톤의 큰 배도 능히 지나갈 수 있다. 남경역에서 상해역까지는 기차 특급으로 4시간 정도가 거린다. 남경은 사투리도 심하지 않고, 물가도 저렴한 편이다. 남경은 역사적인 고도이지만, 근대에 들어오면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더 유명하다. 1842년 1차 아편전쟁에 패한 청나라가 영국과 조약을 체결하여 외국에 중국 본토를 개방한 곳이며, 1937년에는 남경을 점령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이 자행됐던 곳이다. 이 중에서 남경대학살은 약 30만 명을 학살한 것으로 추산되는데, 이 중에는 군인, 민간인 부녀자, 어린 학생, 심지어 유아까지 처참하게 살해했던 것으로 밝혀져 남경대학살은 중국이 당한 이민족의 침략 중에서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다. 1912년 손문은 이곳을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수도로 정했으며, 중일전쟁 때에는 국민당 정부의 소재지이기도 했다. ◈ 남경의 음식점 - 남경에도 고급호텔과 고급식당이 많이 있지만, 그것보다도 샤오차이(小菜)라 불리는 간식거리들을 맛보는 것이 재미있을 것이다. - 남경은 그런 것들이 풍부한 도시이기 때문에, 길거리의 포장마차를 그냥 지나치지 말고 조금씩 맛보는 것도 좋다. 포장마차가 많은 곳은 남경의 번화가 두 곳인데, 한군데는 골동품상가로 번화한 부자묘에서 진회하로 이어지는 남쪽 일대인데, 야시장 등의 자유시장이 자주 열리는 곳이니만큼 간식거리도 풍부하다. 또 하나는 신가구 주변인데, 중국 10대 백화점의 하나로 꼽히는 인민상점이나 식료품, 의류, 책 등의 대형점포가 줄지어 이어져 있다. - 또 좀 비싸지만 고급스럽고 운치있는 곳을 찾으려면 신가구로에 있는 승리반점이나 금릉반점에 가면 되는데, 승리반점에서는 중국풍 케익과 커피를 맛볼 수 있으며, 금릉반점에는 회전 레스토랑이 있어서 시내를 한눈에 바라보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.
|